비내리는 고모령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지고 몇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이 노래는 1946년에 나온 노래로, 유호 작사, 박시춘 곡을 현인이

부른 노래이다.

가수 현인님은 이 노래를 좀 신명나는 가락으로 불렀지만, 사실 이 노래는

매우 슬픈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부엉이가 우는 대목에서 그렇다.




대구 수성구 동촌유원지 옆 망우공원과 붙어 있는 인터불고 호텔 들어가는

한 쪽 옆으로 ‘고모령(顧母嶺)’이라는 노래비인지, 아니면 고모령 기념비인지

모르는 시비가 있고 여기 위 노랫가사인 ‘비내리는 고모령’이 적혀있다.

그 뒷면에는 이 노래의 근거지가 바로 이 고모령이 맞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고모령이란, 바로 그 인터불고 호텔의 옆을 지나 경산 쪽으로 가는 길의

시작에서 한 1km 쯤 이어지는 아주 작은 언덕을 말한다.

그 끝에는 아주 작은 역, 지금은 폐쇄된 고모역이 있다.

어머니를 돌아보게 한다는 고개....그 길은 요즈음은 무슨 고개로는 느껴지지

않고, 다만 좀 쓸쓸한 골목길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지난 20일, 가뭄 끝에 가을 단비가 내리던 날 밤 자정쯤에

고모령을 넘었다. 그 때, 위의 노랫가사에서처럼 부엉새가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건 마치 주현미의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혼자 걷는 사람아...’ 에서처럼,

난 밤비내리는 영동교를 한 다섯 번쯤 건넜었는데 거기 혼자 걷는 사람을

보지 못했듯, 그리고 칠갑산을 넘으면서 어디서건 콩밭 매는 아낙네를 볼 수

없었던 이치와 같기는 하다.




나는 고모령에서 차를 대구쪽으로 몰고 오면서, 고개 마루 어디서쯤 이 노래의

주인공이 어머니의 손을 놓고 이별했을까를 가늠해 보았다.

주인공은 시골 집을 떠나 대처로 가는 길이었으니, 분명 대구쪽으로 갔으리라...

...여기서 쯤일까? 노래의 주인공...똘이는 어머님의 손을 아직은 붙잡고 있으면서

이렇게 말했으리라..



“어머니...이젠 들어가세요...제가 꼭 성공해서 돌아와 어머니를 모실께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긴 경상도라는 걸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그 비오는 날 밤의 고모령 풍경은 이렇지 않았을까?



“어무이요, 이자 그만 들어가이소. 비도 오고 고개도 넘어야 하는데...지가 지금

가면 꼭 성공해가 올낍니더...두고 보이소....그동안 꼭 건강하시고예...하루

세끼 꼭 챙기 드시고예....그라고 참 뒷마당에 땡벌 집 건드리지 마시고예...땡벌한테

물리가 죽는 사람도 있다 아입니껴.."

“그래 알았다....이기 무신 고개라고....니가 가는데 내가 우예 안나와 보고 되나..

내가... 논 서마지기만 있어도..니를 안보내는 긴데....난 니가 어디 가도..니만 건강하믄 된다..

.꼭 편지 하고.....알았제?“

“그라믄요...이렇게 어무이를 두고 가는데....그라고 뒷집 순이 있잖아예...우리 집에

광목 있는거 순이 주만 안됩니꺼?...옷이없는 거 같아서...“

“야가...먼 길 떠나는 아가 무신 엉뚱한 걱정은...니 순이카 무슨 일 있는거 아이가?”

“어무이도..일은요...그냥....”

그러면서도 똘이는 차마 순이와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자신이 떠나는 마당에

어머니에게 또 다른 걱정꺼리를 드릴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똘이는 다만 며칠전 밤, 노랫가사의 2절에서처럼 물방앗간 뒷전에서 순이와

엄청난 일을 벌여 놓아 걱정이 태산이었으나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 일이

천근의 무게로 발목을 잡고 있으니...



“안그래도 어제 순이가 왔드만은..무신 개떡 했는데 묵어 보라면서...근데 가도 요새

무신 걱정이 있는감....얼굴이 꼬죄죄한기 말이 아니드만...기가 푹 죽어가지고....“

“...어무이예 아젠 들어가이소...저도 빨리 가야 하잖아예...”

“그래 알았다..그라고 야야...이거..


내 결혼할 때...너거 할무이가 주시던 반지 아이가.

내가 이거 둬가 뭐하겠노, 니가 객지에 나가만 필요할테이 가 가거라.“

어머니가 허리춤에서 내 놓는 한 돈 짜리 금반지에 똘이는 다시 콧등이 시큰거린다.



그 때, 멀리서 부엉이가 운다. 순이가, 먼 길 떠나는 똘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자

몰래 따라 왔는데 도대체 끝이 나지 않으니 그렇게 부엉이 소리로 빨리 끝내라는

재촉을 해 온 것이다.

“아이고, 내사 아들 보내는 마당에 속이 타는데 부엉이는 와 울어쌌노...누구

죽는 거 볼라꼬 염장지르나....“

“어무이예.. 이젠 그만 ...들어가시라는데도....비맞으만 감기든다니까예...”

“그래 알았다....비라도 맞아야 내가 열이 식제....그래 그래.....“

그렇게 비내리는 고모령에서는 어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똘이가 울었고

부엉이도 부엉부엉 울었다.







...그럼 그 후 똘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내용은 가사의 2절,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해이던가’ 에 잘 나타나 있다.

똘이는 맨드라미가 피고 지는 걸로 한 해가 가는 걸 세어왔다.

맨드라미란 도심에서는 잘 기르지 않는 꽃이다.

그는 대처로 가서 청운의 꿈을 펼쳐 볼 생각이었으니 서울로 갔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똘이는 서울에 도착하지 마자 사기꾼에게 몇 푼 되지도 않는 노잣돈을

모두 날렸고... 서울 온지 3일도 되지 않아 어머니가 주신 한 돈짜리 반지도

팔아 치웠다.

말이 그렇지 서울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던가...그 후 똘이는 나쁜 일에 휘말려

교도소에라도 갔거나, 아니면 알콜 중독자기 되어 한강의 어느 다리및에서 여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마 그럴 리가....그는 외국에 나가지도 않았고(가사의

내용중에 그리운 고국이나, 타국산천...등의 표현이 없으므로), 그렇다고 해서

고모령을 떠난 후 한번도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망향초’라는, 진짜 그리움에 젖은, 있지도 않은 꽃을 만들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망향초란 말 그대로 고향을 그리는 풀이 아닌가. 그 말은 고향이 그리워도 한 발자욱도

못 움직인다는 뜻이다.



똘이는 고향을 떠나며 가슴에 품었던 청운의 꿈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츰 어두운

암운으로 변해 갔고, 어머니와 순이에게 했던 약속도 지킬 수 없게 됐다는 걸 깨닿고

절망했다.

무엇보다 똘이는 타향에서의 밤이 무서웠다.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같은 타향살이 신세인 덕이(물론 순이보다 백배는 못했지만)를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다 보니 아이도 생기게 되고...그렇게 둘은 서울의 변두리,

지금의 일산이나 분당쯤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는 매 해 사립문 한 켠에 심어놓은 맨드라미가 피고 지는 걸로 해가 가는걸 세었고.

그렇게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와 순이에 대한 그리움을 탄식으로 대체해 갔다.



그러기를 벌써 십 수년, 똘이는 이제 더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 그러나 고향을 그리는

사무침을 술좌석에서 누구에겐가 털어 놓았고 그 아픈 마음을 이해한 어느 친구가 다시 이

이야기를 퍼뜨려 결국은 이 노래의 작사가인 유호씨에게 까지 전해지게 됐다.

유호씨는 당시 매우 인기있는 작사가였으므로 이런 사연을 듣고도 그걸 바로 가사화하지는

못했다. 그는 이런 사연을 듣고 메모를 해 놓은 지 2년 후,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

생 각이 나서

고모령을 떠올렸고, 그제서야 초안을 잡아놓았던 메모에 손질을 하게 됐다.

'비내리는 고모령'은 이렇게 탄생하게 됐다. 아니, 그렇게 탄생했으리라.



이 노래가 나 온 해는 1946년, 그 때 똘이가 고향을 떠나 온지 어언 20년이 됐으므로,

똘이가 고모령을 떠나 온 정확한 해는 1922에서 1924년 사이가 된다.

그리고 고모역이 생긴 해는 1925년, 고로 똘이는 바로 그 해 1~2년 전 쯤의, 어쩌면

고모역 공사가 한창인 때쯤에 고향을 떠나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요즈음도 노래방에서 많은 똘이를 만난다.

“어머어님의....손을 노옿고...돌아설...” 노래를 부르는 슬픈 똘이를.

어느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과 순이에 대한 통한이 없을까.

남자라면 누구나 물레방아 뒷전에서, 요즈음은 비오는 날 월드컵 주차장에서,

아니면 어느 시골길 한 켠에서 순이를 양산해 내고 온갖 약속을 남발한다.

그리고 순이의 가슴은 얼마나 탔을까. 어쩌다 애틋한 사연은 없어도 덕이 역시

나름대로의 가슴아픈 사연을 담고 살아간다.

다만 순이나 덕이는 요즘의 노래들 거의 대부분의 가사 내용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낸다. 남들이 그 깊은 뜻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오늘같이 비가 올 것 같은 날, 나는 고모령에 가고싶어진다.

거기서 난 부엉이 우는 소릴 듣게 되리라.

거기, 죽어서 부엉이가 된 순이가 아픈 울음을 토해 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엉, 부우엉...니 물방앗간 뒷전에서 내 옷고름 풀미 머라켔노?

뭐 삼년이면 온다고? 꼭 온다꼬? 이기 삼년이가? 내가 언지 돈 벌어오라 켔나?

닌 남아일언중천금이란 말도 모리나? 사나가 됐으만 약속은 지키야제...그기 무신 약속인데...

지키지 못할 약속은 와 하노?

니 어무이 돌아가실제...내 손 꼭 잡고....난 어무이 소리도 못하고...어무이 내 손잡고

똘이가? 하실때...내 가슴이 어땠는지 아나? 아이라예...

지는 순이라예....며느리 되는 순이라예 소리 한 번 몬해 보고....니 죽어도 내한테는

죽는다 카고 죽어야 안되나? ...부엉, 부우엉, 부어어어엉....“